우리들의 본능이라는 것은 어디까지인가?
과연 본능적인 욕구를 지연시켜 만족시킬 수 있는 인내력은 또 얼마나 되는가?
우연히 보게 된 아침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욕구에 대한 한 부분이 잠깐 생각꺼리를 던져준다.무심결에 들어보면 사는 게 모두들 비슷한데 무엇이 그리 다를까 싶다가도 우리들 모두 개개인이 자신의 색깔을 가지고 있음을 알면 다름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심리학자 Maslow에 의하면 인간의 욕구는 5단계로 나누어진다.
인정의 욕구와 자아실현 욕구가 최종적으로 이루어야 할 욕구라 했다.그렇다면 소비 패턴도 이것을 이루어 가는 한 과정이 아닐까 싶다.
개인들의 소비 행태를 봐도 그 사람의 한 면을 볼 수 있다.끝임없이 절약하고 최소한의 소비를 미덕으로 아는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헛되게 돈을 쓰는 경우가 거의 없는 듯 하다.그리고 그렇게 절약하면서 쌓여가는 자신의 통장을 보면서 행복해하고 안정의 욕구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그것이 깨어지는 상황이 생기거나,배우자가 자신과 반대 성향의 사람이라면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것이다.
반면,충족의 욕구를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은 안정적인 것이 좀 무너진다해도 그것을 감수하면서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다른 것을 희생하게 된다.지금 나의 상황을 최상으로 하면서 나 스스로를 만족시킬 때 자존감을 느끼게 되고 그것으로 또 다른 생산활동에 충실하게 된다.더 나아가서 문명 발달을 위해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단 욕구 충족엔 반드시 경제적 도움이 바탕이 되어줘야 하는 것이 문제다.
소비 패턴이 상반된 부부인 경우,안정을 추구 하는 사람과 욕구 충족을 추구하는 사람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마찰과 충돌을 일으키는 빈도가 높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상대방이 그것으로 인해 행복을 느끼고 자아 발전의 밑 바탕으로 삼는다면 서로 약간의 양보와 배려로 인정해 주어야 할 것이다.하지만 그것이 말 처럼 쉽지는 않다는 것이다.안정의 욕구가 강한 사람의 경우,자기 욕구를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을 받아들이가 어렵듯이,충족 욕구가 강한 사람의 경우 그렇게 악착스럽게 모으는 것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가족의 경우는 부모가 어떤 유형이냐에 따라 아이들도 비슷해지거나 아니면 정반대의 성향을 보이게 된다.그렇게 지내다 보면 아이들은 초기의 실패가 자기조절에 의해 스스로 조금씩 조정 되고 성인이 되면서 합리적인 소비 패턴을 지니게 되리라 믿는다. 부모의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간섭이 없다면 시행착오 가운데 배워가게 된다고 믿는다.
누구나 행복하길 바라며 매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그런데 그 행복이라는 것이 어느 하나의 절대적 가치에 의해 평가되는 것이 아니더라는 것이다.아주 작지만 나를 감동시키는 하나를 만나면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도 한다.
반면,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로 내 마음을 내가 볶아대다가 지옥으로 보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시선에 내 삶을 올려 놓을 것이 아니라 나를 중심에 놓고 내가 주체가 되어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어려운 상황이라면 체면 유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일어서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재기하는 것에 모아야 할 것이다.
모두 기운을 모아서 행복의 창문을 열어 보자!!
과연 본능적인 욕구를 지연시켜 만족시킬 수 있는 인내력은 또 얼마나 되는가?
우연히 보게 된 아침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욕구에 대한 한 부분이 잠깐 생각꺼리를 던져준다.무심결에 들어보면 사는 게 모두들 비슷한데 무엇이 그리 다를까 싶다가도 우리들 모두 개개인이 자신의 색깔을 가지고 있음을 알면 다름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심리학자 Maslow에 의하면 인간의 욕구는 5단계로 나누어진다.
인정의 욕구와 자아실현 욕구가 최종적으로 이루어야 할 욕구라 했다.그렇다면 소비 패턴도 이것을 이루어 가는 한 과정이 아닐까 싶다.
개인들의 소비 행태를 봐도 그 사람의 한 면을 볼 수 있다.끝임없이 절약하고 최소한의 소비를 미덕으로 아는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헛되게 돈을 쓰는 경우가 거의 없는 듯 하다.그리고 그렇게 절약하면서 쌓여가는 자신의 통장을 보면서 행복해하고 안정의 욕구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그것이 깨어지는 상황이 생기거나,배우자가 자신과 반대 성향의 사람이라면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것이다.
반면,충족의 욕구를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은 안정적인 것이 좀 무너진다해도 그것을 감수하면서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다른 것을 희생하게 된다.지금 나의 상황을 최상으로 하면서 나 스스로를 만족시킬 때 자존감을 느끼게 되고 그것으로 또 다른 생산활동에 충실하게 된다.더 나아가서 문명 발달을 위해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단 욕구 충족엔 반드시 경제적 도움이 바탕이 되어줘야 하는 것이 문제다.
소비 패턴이 상반된 부부인 경우,안정을 추구 하는 사람과 욕구 충족을 추구하는 사람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마찰과 충돌을 일으키는 빈도가 높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상대방이 그것으로 인해 행복을 느끼고 자아 발전의 밑 바탕으로 삼는다면 서로 약간의 양보와 배려로 인정해 주어야 할 것이다.하지만 그것이 말 처럼 쉽지는 않다는 것이다.안정의 욕구가 강한 사람의 경우,자기 욕구를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을 받아들이가 어렵듯이,충족 욕구가 강한 사람의 경우 그렇게 악착스럽게 모으는 것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가족의 경우는 부모가 어떤 유형이냐에 따라 아이들도 비슷해지거나 아니면 정반대의 성향을 보이게 된다.그렇게 지내다 보면 아이들은 초기의 실패가 자기조절에 의해 스스로 조금씩 조정 되고 성인이 되면서 합리적인 소비 패턴을 지니게 되리라 믿는다. 부모의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간섭이 없다면 시행착오 가운데 배워가게 된다고 믿는다.
누구나 행복하길 바라며 매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그런데 그 행복이라는 것이 어느 하나의 절대적 가치에 의해 평가되는 것이 아니더라는 것이다.아주 작지만 나를 감동시키는 하나를 만나면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도 한다.
반면,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로 내 마음을 내가 볶아대다가 지옥으로 보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시선에 내 삶을 올려 놓을 것이 아니라 나를 중심에 놓고 내가 주체가 되어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어려운 상황이라면 체면 유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일어서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재기하는 것에 모아야 할 것이다.
모두 기운을 모아서 행복의 창문을 열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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